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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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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 지금은 밝은 눈을 떠야 할 때이다.
  • 입력 : 2019. 07.21(일) 23:14
  • 조도환 논설위원
혜안

‘모든 집착과 차별을 떠나 진리를 밝게 보는 눈을 말한다.’

임진왜란은 당시 일본을 통일했다고 선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완전하지 못한 전쟁으로 인한 일본 내의 불만을 억누르고자 대륙침략을 공언하면서 ‘여름은 한양에서 매년 보내고 겨울은 북경에서 매년 보내겠다.’라는 말로 봉건영주들을 끌어모아 일으킨 ‘노망난 노인네의 전쟁’이라며 일본 역사가들이 폄훼할 정도로 잔인하고 무모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동북아시아가 모두 참전한 국제전이었으며, 당시 명나라는 동쪽의 조선을 제외한 북, 남, 서쪽의 국경선 모두의 국가와 분쟁 중이었는데 이런 판국에 일본은 명나라를 정벌하겠다고 대놓고 조선을 20만 이상의 병력으로 침략한 상황이라서 조선을 집어삼키게 되면 일본의 국력이 더 커지고 국경선이 바로 코 앞으로 요동, 동남부 해안가, 그리고 수도 북경이 위협받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며, 명나라의 동북 국경에 못해도 수십만 병력을 상시 주둔시켜야 하고 이 막대한 비용을 두고두고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일본이 북쪽의 오랑캐들과 손을 잡고 명나라를 침공한다면 아무리 명나라라도 간단히 막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반면에, 조선은 건국 이후 명나라를 침략하기는커녕 절대적인 우호국이다. 당연히 조선을 살려두는 게 명나라에 이득이 된다. 온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이는 건 명나라로서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명나라도 왜가 일으킨 이 국제전에 할 수 없이 참전하게 된다.
또한, 명나라 황제인 만력제 본인에게도 임진왜란 참전은 상당히 매력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미 임진왜란 발발 전부터 만력제는 후계자 문제로 인한 본인의 태업으로 인해 신하들과의 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고 만력제는 권위를 확보할 수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침 터진 임진왜란은 만력제로선 아주 좋은 기회로 '위기에 처한 번국 조선을 구원하고 감히 천조의 질서를 어지럽힌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명분은 천자로서의 위엄을 떨치고 권위를 확보할 매우 확실한 방법이었다.
임진왜란에 명나라가 참전한 이유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현재 중국이 북한을 놓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중국은 국경선을 두고 미국과 싶지 않다. 만일 북한이 친미 국가로 돌아서서 신의주에 미군이 주둔한다면 수도인 베이징이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 중간에서 완충 역할 및 유사시 동해로 진출할 전력의 발판이 되어줄 북한이 필요하다 보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도 주변국이 대부분 적대국이란 상황 역시 임진왜란 당시 명과 유사하다. 인도,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일본 전부 중국과 영토 및 영해 분쟁으로 엮인 가상 적국이며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과거의 무력분쟁 등을 보면 그저 우호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관계다. 일본은 국제 질서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오늘 선거의 사전 출구 조사는 아베의 승리를 예상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아베가 승리하게 되면 일본은 군사 대국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아베는 한국을 ‘경제침략’하는 중이다. 아베가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참한다고 선언은 했지만, 아베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역시 아베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북한은 몇 안되는 중국의 우호적인 주변국 중 하나로 한국 역시 아직 대놓고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까지는 보지 않지만, 중국에 대해 중국위협론이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서 남북 간 종전선언 논의가 나오는 현재 미, 중 간 완충지로 북한을 중립화하여 국체 자체는 놔두고 비핵화 및 무장해제만 하자는 논의가 나오는 것이다. 미국과 직접 충돌하는 상황만은 중국은 피하고 싶어한다. 등소평의 유언도 한몫한다. “100년 동안 미국과는 전쟁을 하면 안된다.”

다음은 한일 병합 조약 전문이다.
‘한국 황제 폐하(皇帝陛下) 및 일본국 황제 폐하(皇帝陛下)는 양국간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기 위하여,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 만한 것이 없음을 확신하여 이에 양국 간에 병합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統監) 자작(子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각각 그 전권위원(全權委員)에 임명한다. 위의 전권 위원은 회동하여 협의하여 다음의 여러 조항을 협정한다.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
제3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 후비 및 후예로 하여금 각각 그 지위에 따라 상당한 존칭, 위엄 및 명예를 향유케 하고 또 이를 보지(保持)하는 데 충분한 세비(歲費)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제4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 이외에 한국의 황족(皇族) 및 후예에 대하여 각각 상당한 명예 및 대우를 향유케 하고 또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공여할 것을 약속한다.
제5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훈공이 있는 한인(韓人)으로서 특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고 또 은금(恩金)을 준다.
제6조. 일본국 정부는 전기(前記) 병합의 결과로 한국의 시정(施政)을 전적으로 담임하여 해지(該地)에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한인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충분히 보호하고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한다.
제7조. 일본국 정부는 성의 있고 충실히 새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서 상당한 자격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帝國)의 관리에 등용한다.
제8조. 본 조약은 한국 황제 폐하 및 일본국 황제 폐하의 재가를 경유한 것이니 반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
이를 증거로 삼아 양 전권 위원은 본 조약에 기명(記名)하고 조인(調印)한다.
융희(隆熙) 4년 8월 22일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
메이지(明治) 43년 8월 22일
통감(統監) 자작(子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대한제국 황실은 황제국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황제도 왕으로 강등되었다. 일제에 적극 협력한 기존 지배층들은 조선 귀족령의 선포로 일본의 지배층에 포섭되었다. 일제는 자신들의 체제 선전과 조선인들의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종과 순종을 이용했다.
일제는 암묵적으로 고종과 순종을 이전처럼 일국의 군주로서 대접을 해주었다. 일제는 경성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에게 고종과 순종을 알현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1911년 정초와 고종의 탄신일에는 학생들이 대한문 앞에 모여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는데, 원칙적으로 안되는 일이었지만 조선총독부는 이를 눈감아주었다. 또한 구황실에 막대한 세비도 지급되어 1911년에만 150만 엔의 생활비가 지급되었고, 고종과 순종에게 당구, 담배, 영화 등의 취미 생활을 제공하는가 하면 영친왕의 일본 생활에 대한 영상물을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1917년 함흥 순행도 눈여겨볼만한데 이때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황제의 깃발들이 휘날리기도 해서 일부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 의례를 지내는 순종도 황제의 복식을 갖추었다. 일본 군함을 타고 도쿄까지 행행한 것은 여러모로 당시 조선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고종과 순종조차도 이왕의 작위와 봉록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많은 구황족들이 적극적으로 대일 항전에 동참하지 않고 일제가 제공한 지위에 안주하거나 몇몇은 적극적으로 부역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왕가에 대한 배신감으로 조선인들은 왕정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1919년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에도 유학자나 근왕주의자는 단 한명도 없다. 또한 1919년에 성립된 임시 정부도 대한 제국 임시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다. 구 황실을 우대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써그리고 정치적으로 써먹기위해 우대하는 것이다. 황실에도 민족투사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당연히 독립에 도움이 될테니까. 고종이 사망한 것이 1919년 1월 21일인 것을 생각하면 당시 사람들의 조선 왕실에 대한 실망감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업자득으로 가뜩이나 한국에선 황실에 대한 이미지가 나빴고,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훼손될 것을 염려해 구 황족 입국을 철저하게 막았다. 황족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보탠 것도 없었는데, 일제치하에서 독립하자마자 다시 나타나 제국의 부활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당초 이승만 본인이 민주주의 국가를 위한 첫걸음으로서 제국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결국 구 황족은 한반도에 상륙하지 못했으며, 이로서 구심점이 만들어질 여지조차 남기지 않아 황실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조선-대한제국을 떠난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확고해진 것이다. 이후 영친왕을 비롯한 해외 구황족의 귀국은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나서야 가능해졌는데, 이것조차도 감사할 일로서 구황족이 그 이상, 즉 황족에게 돈을 내달라거나, 경복궁을 황족에게 제공하라거나 하는 요구를 할 계제는 못되었다. 귀국조차도 세월이 흘러 대중들의 감정이 사그라들었기에 겨우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당시에 대한 제국 황실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도 했다. 고종의 비자금도 러시아와 일제에 의해 행방이 묘연해졌기에 독립군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일제가 주는 구황실 지원금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당시 선진 지식인들이 대부분 공화정을 선호하는 추세였기에 황실과는 대립 관계라 이들과 연대하는 것 역시 말이 안되었다. (나무위키)”

영화 암살에서 노덕술역의 이정재 대사는 유명하다. 왜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하며 살았냐는 질문에 노덕술은 “내가 독립이 될줄 알았나, 독립이 될줄 알았으면 안그랬겠지~” “그래?” 탕탕탕~~~
역사란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지금의 세계정세는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한 움직임일 뿐이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BOYCOTT’ 운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의 잘못된 행태들이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사를 잘못 해석하는 자들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 동북아는 격랑에 휩싸여 있다. 강한 대한민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역사는 혼자서 존재하지 않는다. 왜곡된 역사를 자신의 가치로 삼는 자들도 존재한다. 그런 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준비된 ‘인성교육’이다. 교육백년대계에 인성교육을 꼭 가르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한국인성교육중앙회와 한국인성교육학회는 이런 인성교육을 하고자 준비하고 실천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도약의 출발선에 서 있다. 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투철한 정신 무장이다.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강한 정신이 있어야 강한 육체가 만들어진다. 지금이라도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인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혜안, 지금은 눈을 떠야 할 때이다.


조도환 신동아방송 논설위원
연세대학교.대학원 보건의료법윤리학 전공
저서
전문직업인의 직업윤리와 인성
의사소통능력
대인관계능력
직업윤리
병원경영학
중국 의료분쟁 조정제도
2020더 비기닝(총 13권 장편 SF소설)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