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士無雙과 覆水不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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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國士無雙과 覆水不返
  • 입력 : 2019. 08.17(토) 23:01
  • 조도환 논설위원
國士無雙과 覆水不返

사기(史記)에서 유래된 國士無雙은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人物)을 말한다. 둘도 없다는 뜻이며, 매우 뛰어난 인재(人材)를 이르는 말이다.

초패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촉땅으로 들어가는 유방의 심정은 사지로 가는 자의 그것과 별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 길은 멀고 험해 탈영하는 자가 속출했고 촉땅에 도착하니 춥고 험한 산세는 따듯한 동쪽이 고향인 병사들에게는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탈영자를 단속하는 것도 일이었을 정도였다. 장자방의 계략으로 잔도마저 불태웠으니 갈 길 없다는 생각의 병사들 사기는 더욱 떨어지고 마침내 패잔병같은 분위기는 한군 전체를 감싸고있었다. 탈영병들은 촉땅 사람들의 사냥로를 이용해서 매일, 매일 도망가고 있을 때, 승상 소하마저 도망갔다는 보고를 받은 유방의 심정은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승상 소하는 한신을 잡으러 간 것이었고 이틀 뒤, 한신을 데리고 나타난 소하에게 유방은 크게 꾸짓으며 말했다.
“승상은 왜 도망쳤느냐?” 소하가 말하기를 “도망친 것이 아니라 한신을 잡으러 간 것입니다.” 유방이 말했다. “한신은 집극랑 아니더냐? 이자가 무엇이건데 이자를 잡으러 간 것이냐? 다른 장수들이 도망갔을 때는 그렇지 않더니 유독 이자를 쫓아간 이유는 무엇이란 말이더냐?” 유방의 하명에 소하가 말하기를 “한신은 장자방이 추천한 인물이옵니다. 대왕께서 한중의 왕이 되시려면 한신이 필요 없겠지만, 천하를 다스리겠다면 꼭 필요한 인물이옵니다. 모든 장군은 비교적 얻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한신 같은 경우는 이 나라의 인물중에 둘도 자입니다. 諸將(제장)은 易得耳(이득이)나 至如信者(지여신자)는 國士無雙(국사무쌍)이다. 폐하께서 한중(漢中)의 왕만 되시려 한다면 그가 필요 없겠지만 천하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한신 없이는 더불어 그 일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라는 데서 유래했다. 한신은 그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 유방의 동서인 번쾌와 그 세력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유방을 도와 천하를 재패하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兎死狗烹의 유래가 되기는 했지만, 한신은 그만큼 뛰어난 인재였던 것이다.
그런 유래가 지금은 고소의 대상이 되었다. 한심한 일이다.

覆水不返

엎지른 물은 도로 담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한번 저질러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다.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아버지로 나중에 문왕(文王)이란 시호(諡號)를 듣게 되는 서백(西伯)이 어느 날 황하의 큰 지류인 위수(渭水) 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강가에서 낚시질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심심한 참에 말을 붙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백은 속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보기와 다르게 세상 이치에 대한 식견과 논리가 놀라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단순히 오래 세상을 산 촌 늙은이가 아닌, 풍부한 학문적 지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탁월한 경륜가의 언설이었다. 서백은 잠깐의 인연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싶어 물었다.
“어르신의 함자는 무슨 자를 쓰십니까?”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여상(呂尙)이라 하지요.”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보니 제가 스승으로 모셔야 할 분으로 여겨집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잘 지도해 주십시오.”
“과분한 말씀이오. 이런 촌구석에 틀어박힌 민초(民草)가 뭘 알겠소.”
강여상은 사양했지만, 서백이 하도 간곡하게 매달리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청을 받아들였다. 이 강여상이 바로 ‘낚시질로 세월을 낚았다’는 그 유명한 강태공(姜太公)이다. 강여상은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이 궁색했다. 그런데도 가정에는 등한시한 채 사시장철 책만 끼고 살았으므로, 아내 마씨(馬氏)는 참다 못해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러나 서백을 만나면서 강여상의 처지가 백팔십도 변했다.
그는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서백의 아들 발(發)의 스승이 되었고, 그 발이 주나라를 세우자 재상을 역임한 뒤 제후로 봉해졌으며, 탁월한 지식과 지도력으로 신흥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강여상이 이처럼 출세하자, 보따리를 싸들고 친정에 돌아가 있던 아내 마씨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용서해 주세요. 이전에 당신 곁을 떠난 것은 하도 배가 고파서였지, 당신이 싫거나 미워서가 아니었답니다.”
그 말을 들은 강여상은 곁에 있던 그릇의 물을 마당에다 부었다. 그런 다음 그릇을 아내한테 주며 말했다.
“이 물을 여기 도로 담아 보구려.”
“아니, 엎지른 물을 어떻게 담으라는 거죠?”
흙 속에 스며드는 물을 바라보던 마씨의 시선이 꼿꼿해져 강여상을 향했다.
“바로 그대로요.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주워 담을 수 없고’, 한번 집을 나간 여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오.” (고사성어 따라잡기, 2002. 5. 15., 구인환)
마씨의 행패는 기록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공통점은 악처중의 악처였다는 것이다. 강태공의 공부를 방해하는 것이 취미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 그의 결정을 뒤집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뛰어난 수학능력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다니고, 엘리트 과정을 거친 자의 입에서 연일 독설이 쏟아지고 있다. 한때는 대한민국 국모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자의 입에서 나오는 어지러운 소리가 한 집안이었다면 이런 악처도 없겠단 생각이다. 극우 사이트에서 나오는 ‘대일민국’이란 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공부를 제 아무리 잘해도 인성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어떤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길래 왜적의 침략 앞에서 친왜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궁금할 뿐이다. (필자의 지난 사설에서 잔존 일본인의 존재를 밝히는 사람의 주장을 다뤘다.)
전쟁에서 간자로 드러난 자는 사형뿐이다.
一罰百戒가 꼭 필요한 지금이다!.


조도환 신동아방송 논설위원

*한국인성교육중앙회, 한국인성교육학회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