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학아세 (曲學阿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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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곡학아세 (曲學阿世)
  • 입력 : 2020. 08.14(금) 21:01
  • 조도환 논설위원
사진=영화 장평대전 캡쳐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곡학아세 (曲學阿世) 란,
학문을 구부려 세상에 아첨한다는 말로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私道)로 세상에 아부하여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뜻하는 것으로 전한(前漢)의 효경제(孝景帝)가 원고생(轅固生)에게 박사(博士)의 벼슬을 주었는데,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자가 나이 많은 원고생을 시기고 모함하자 그에게 ‘올바른 학문에 힘써 세상에 알려주게. 배운 것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라며 한 말이라고 한다.

출세욕(出世慾), 권력욕(權力慾)에 눈이 먼 지식인을 비판하거나 삿된 학설 등으로 세상을 현혹하려는 者들, 지식은 많은데 나쁜 쪽에 쓰는 者들을 지칭한다.

살아있는 권력의 인사가 시작되자 실직하게 된 어떤 者가 장평대전을 언급했다고 한다.

장평대전(長平大戰)은,
기원전 262년경 있었던 전국시대(戰國時代) 진과 조나라의 회전(會戰)으로, 당시 조나라는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가 버티던 사나운 맹수의 나라로 여겨지며 주변국과의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나 상앙의 신법 등으로 강국으로 부상하던 진나라는 소진이 주창하던 합종책을 깨고 장의의 연횡책을 밀어붙이던 때라 당시 사나운 나라로 여겨지던 조나라지만 한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퇴각 직전까지 몰린 진나라는 인상여가 병으로 참전하지 못한 이 전쟁에서 수비에 성공한 조나라 장수 염파를 내리고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을 발탁하게 한 재상 범수(范睢)의 반간계 성공으로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는 포로로 잡은 조괄 포함 조나라 병졸 45만을 조를 나누어 구덩이를 파게 한 후, 그곳에 묻어버리는데, 당시 인구 3백만인 조나라는 장정 45만을 잃은 장평대전의 참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30여년 후 진시황에게 멸망 당한다.

장평대전은 사가의 시각에 따라 견해 차이를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가는 범수의 지략을 높이 사고 효문왕의 실패에 대해선 인상여가 참전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으니...,

그 者가 언급한 것이 효문왕의 인사인지 아니면 진왕의 인사인지는 명확하게 하지는 않았는데, 본인이 범수나 조괄 정도의 급은 된다고 판단한 것도 어이없지만, 그 어느 쪽이 던 후배 검사의 그에 대한 평을 본다면 그들의 사고방식은 일반 국민의 그것과 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처세에 능수능란한 검사, 난세의 간교한 검사’ (임X정, 추미애 저격한 문x석 향해 "간교한 검사" 2020.08.10. 머니투데이)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 이라면 ‘나의 공부가 만인을 위하여 쓰이길 바라는 것’이 正道란 생각으로 行 해왔으나,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고, 일제에 피로 맹세하는 토착 왜구 등 별종들도 있어 그들을 경계하는 방편을 많이 만들어 시행해 왔지만, 작금의 상황은 친일 청산 없이 군부독재가 훼손한 나라라 한계가 있어 보인다. (BBC ‘한국 부패의 기원은 박정희 체제’ 2020. 08. 13)

곡학아세할 정도니 후안무치(厚顔無恥)는 기본으로 탑재했을 것으로 미, 중의 전쟁으로 한국은 선택을 강요당하고 일본의 재무장 등 치열한 국제 정세는 외면하고 권력다툼만 일삼는 작금의 사태를 보면 군부독재와 함께 컸으니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을 누리고 싶은 마음, 내려놓지 않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외부 전문가의 수술을 받아야 할 때다.




#한국인성교육연합#인성원(힐링 명상)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