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남풍(賈南風)의 역설과 백치(白癡) 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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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3(월) 20:32
칼럼
가남풍(賈南風)의 역설과 백치(白癡) 王
  • 입력 : 2022. 09.15(목) 14:31
  • 조도환 논설위원
사진=가남풍, 추녀라고 알려졌지만 그의 악행으로 그런 이미지가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남풍은 재림해선 안 된다.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死孔明走生仲達’, 즉,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는 이 구절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54세에 오장원에서 삶을 마친 공명이 촉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마의가 배후를 칠 것을 예상하며 세운 마지막 계략이 성공하면서 나오게 된 이야기다.

죽은 공명에게 혼쭐난 사마의였으나, ‘고령릉(高平陵) 사변(事變)’으로 진(晉)나라 초석을 다지게 되고, 그의 아들 사마염이 위의 마지막 왕인 조환을 협박해 나라를 빼앗으며 시작된 진나라는, 처음엔 ‘치두구’를 불태우는 등 청렴한 생활로 정치를 잘하는 듯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후궁을 10,000여명이나 들이며 호해 못지않은 방탕한 생활로 타의 모범이 되었고, 그 뒤를 이은 사마충(혜제)은 보고도 배우지 못하는 백치(白癡)라, 그가 왕이 되면서, 정확히 말하면 그의 처 가남풍이 권력을 잡으면서 ‘팔왕의 난’이 시작되는 등 짧은 왕조에 망조가 들게 된다.

가남풍은 혜제가 태자 때 간택한 비로, 작달막한 추녀에 질투가 심하고 안하무인에 이기적 인물이었으나, 순욱, 풍담, 양요 등 대신들에게 뇌물을 먹이면서 “사마충이 워낙 백치라 미인이 태자비가 되면 반드시 바람날 것이지만, 지독한 추녀인 가남풍은 언감생심, 백치 남편에게 만족할 것이라 가남풍이 더 좋다”라는 해괴한 논리로 사마염을 설득하게 해서 태자비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독한 추녀인 가남풍은, 지능 낮아 어리석고 힘도 없는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했으며, 어벌쩡 어느 순간 정사를 주무르게 되면서, 선제에게 배운 것 보다 더 질탕한 밤 생활을 위해, 저잣거리 미소년을 납치하기 위한 별동대를 만들어 미소년들을 보쌈 해 밤새 데리고 논 뒤, 고리짝에 넣어 하수구에 버리곤 했으며, 이에 만족하지 못해 전륜하다면 문관 무관가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궁중 의원들과도 놀아났으나 백치인 남편만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심하게 씨 도둑질을 했어도 아들 하나 낳지 못했으니, ‘가남풍의 역설’이란 이름으로 후세까지 전하고 있다.(2022, 신동아방송, 가남풍의 역설과 백치 왕, 조도환)

가남풍은 권력을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휘둘렀는데, 태자비 간택 당시에 추녀지만 단지 돋보이고 싶었던 자신을 조금이라도 반대했던 자, 자신의 일족과 사소한 감정이라도 있는 자, 자신을 위협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은, 옥리를 앞세워 갖은 중상모략으로 숙청하며 재물을 갈취했고,
조금이라도 친분 있는 자들은 중용하자, 벼슬 얻고자 하는 자들이 돈을 싸들고 줄을 서는 등, 본인과 남편과 모친의 패악(悖惡)질이 얼마나 심했는지, 백치 왕 보다 가남풍을 더 싫어했으며, 민심이반으로 지지율은 바닥을 기었다고 한다.

가남풍은 권력 yuji에 걸림돌이던 태자 사마휼을 약 찧는 절구로 빻아 죽이는데, 이를 빌미로 난을 일으킨 사마륜에 의해 독주를 마시고, 44살 이른 나이에 독설을 쏟아내며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가남풍의 몰락은, 권력을 나눠 갖기로 정략적 동맹을 맺은 가모, 배위, 장화 등을 숙청하면서 부터인데, 이들을 제거하려하자 이들 또한 가남풍 등을 찌르는 등, 고물가와 식량난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이, 국방과 외교도 소홀히 하고, 부질없는 권력투쟁만을 벌이며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극심한 흉년으로 많은 백성들이 굶어죽는다는 소식을 들은 혜제는,
“왕: 백성들이 왜 굶어죽는단 말인가?
신하: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던 혜제가 어이없다는 듯 말한다.
“왕: 먹을 것이 없다니? 그럼 고기죽을 많이 먹으라고 하라, 고기죽을 먹으면 굶어죽지 않을 것 아닌가?
신하들: ... “
이런 백치가 왕이니 정치·경제·군사·외교가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하다.

"Banjiha 살면서 왜 미리 대피 안했나"
"내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
......

我生然後殺他!
어떤 핵심가치를 공유하며 긴밀히 협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집 喪났으면 먼저 치러야 된다는 것은 巫堂코스프레도 다 아는 일이다.

‘가남풍의 역설’이 반복 되선 안 된다.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